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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문기의 사유,사회] 왜 게임은 '사회악'이 되었나.

김문기 | 기사입력 2020/11/27 [12:29]

[김문기의 사유,사회] 왜 게임은 '사회악'이 되었나.

김문기 | 입력 : 2020/11/27 [12:29]

1947년 최초의 비디오게임이 개발된 이래, 게임에 대한 인식은 아주 한결같다. '아이들을 홀리는 불건전한 취미생활'. 중독이라는 말이 나오고, 코로나로 그 집단적 무능함을 드러낸 WHO는 게임을 질병으로 분류한다. 총기난사,폭력사건,살인,방화, 이 모든 사건의 기사에 가장 많이 붙는 말은 '범인은 평소 게임을 즐겨 했다' 일 것이다. 정말 게임이 그토록 유해한가? 게임이 이 모든 사회악을 길러내는 인큐베이터인가?

 

먼저, 2020년 기준 모바일게임의 전세계 유저 수는 약 15억 명이다. 세계 인구가 80억에 가까워 지고 있으니, 5~6명 중 한 명은 모바일 게임을 즐긴다는 것이다. 여기에 스마트폰 보급률이나 세대별 스마트폰 이용빈도 등을 고려하고, 모바일이 아닌 콘솔이나 PC게임 유저까지 합친다면 실제 대한민국의 0~30대 절반 이상이 게임을 즐기는 꼴이 될 것이다. 결국, 젊은 세대의 절반이 즐기는 취미를 사건마다 이유로 가져다 붙이는 것이 얼마나 멍청한 소리인지 알 수 있다. 그럼에도 끝없이 저런 기사가 나는 이유는 그저 기성세대가 자식세대들이 나가 놀지 않고, 피씨방이나 집구석에 틀어박히는것이 꼴보기 싫기 때문이다.

 

세대 내부의 경쟁은 시대를 거듭할수록 강해졌다. 고등학교만 졸업하고도 은행에 취업하던 시대가 있었지만, 토익 800점짜리 대졸은 서류조차 내지 못하는 시대가 왔다. '배움'이 신분상승의 정도라 여기던 부모들은 옛적부터 늘 자식의 취미생활을 이해하지 못했고, 그 시간을 낭비라 매도하며 몰아붙였다. 

 

학교만 끝나면 자유시간이던 70년대의 학생들과는 달리, 지금의 학생들은 학교가 끝나도 학원과 과외, 숙제가 기다리고 있다. 왜 뛰놀고 싶지 않겠는가. 어느 학교를 가도 학생들에게 체육시간의 자유활동만큼 인기가 좋은 건 드물다. 하지만, 학교가 끝나면 누구와 어디서 언제 공을 찰 것인가. 주어진 시간은 한없이 부족하고, 뛰어 놀 공간은 없고, 아이들 마다 학원가는 시간도 사는곳도 제각각이다. 아이들은 자신에게 주어지는 짧은 자유시간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사용 할 방법이 필요했고, 자연스레 게임에 빠져든다. 

 

집이나 PC방에서 전원버튼만 누르면 저렴하게 즐길 수 있고, 메신저를 통해 그때 그때 접속 가능한 친구들과 일정 조율 없이도 함께 할 수 있으며, 육체 활동보다 격렬한 뇌활동과 함께 가상의 것들을 새로이 경험한다. 자잘한 활동마다 즉시 주어지는 가상세계의 크고 작은 보상들은, 암만 공부해도 늘지 않는 성적이나 한없이 먼 부모의 기대와 인정과는 달리 아이들에게 그때그때의 성취감을 제공한다. 대체 지금의 아이들이 게임에 빠져들지 않을 이유가 어디있는가? 부모와 사회가 끝없이 요구하는 '효율성'에 가장 부합하는 동시에 아이가 스스로 원할 수 있는 취미가 게임인 것이다.

 

친구들과 땀흘려 뛰고, 동네가 아닌 더 먼곳까지 자전거를 타고 나가는 행위는 그저 윗세대가 버리라 강요하는 낭만적이고 비효율적인 행위일 뿐이다. 좋아하는 시 한구절을 읊는건 오그라드는 중2병이고, 문과를 졸업한 아이들은 속칭 문과충이 된다. 이야기에 몰입하면 진지충이 되고, 감정에 충실하면 흑역사가 된다. 시대의 모든 낭만이 병이 되고, 벌레가 되고, 잊고싶은 과거가 된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가진 유일한 취미가 게임이 된 것은 결과일 뿐이다. 낭만을 배척하고 효율성만을 강제하는 사회의 결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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