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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향 일기 "어릴적에 고향집 앞에는 들판이 있고 영산강이 흐릅니다."

경기도민신문 | 기사입력 2021/09/23 [11:54]

귀향 일기 "어릴적에 고향집 앞에는 들판이 있고 영산강이 흐릅니다."

경기도민신문 | 입력 : 2021/09/23 [11:54]

  © 경기도민신문

  © 경기도민신문

지금은 영산강은 죽산보에 막혀 호수가 되어 버렸지요.

동생이 고향집에서 어머니를 모시고 살았는 데

지금, 어머니는 광주의 요양병원에 계셔서 집이 허전한 것 같습니다.

지난 추석까지는 어머니가 조상님들께 차례상을 준비하셨는데 그 때가 마지막일 것 같습니다.

장남이지만 객지로 올라가 지금까지 자식노릇 한번 못하고

운동한답시고 살았으니 후회스럽기도 합니다.

어머니를 대신해서 우리가 차례상을 마음으로 준비하고 있습니다.

 

농부 겸 직장인 동생과 함께 마늘도 심고 고구마도 캤습니다.

도시농부의 실력을 자연스럽게 보여주었지요.

요즘 밭에서 일할 때에 가장 큰 난적은 모기떼들이 소리없이

공격해서 복잡합니다

신개발품으로 조선일보로 만든 종이 계란판으로 모기향을

만들면 모기들이 얼씬을 못합니다.

조선일보가 무섭나 봅니다.

 

  © 경기도민신문

고향집에서 2.5km 를 가면 죽산보가 있어서 자전거길로

 달리면서 어릴적 영산강의 추억을 회상했습니다.

그 시절, 밀물과 썰물이 있을 때는 모래톱이나 갯펄들이 있어서 

재첩도 잡고 낚시도 하고 멱도 감고 소 꼴도 베었습니다.

참 좋은 생활터전이자 놀이터였습니다.

물이 흘러야 자연이 살고 강물이 흘러야 강입니다.

강산을 파헤친 4대강을 재자연화해서 후손들에게 물려주었으면 합니다.

 

시골집 동네의 밤은 전등 불이 많이 없어졌습니다.

도시로 이사가고 돌아가시는 분들이 늘어나 빈집이 많아졌습니다.

농촌 및 구시가지는 인구소멸에 봉착했습니다.

수십가지의 요인으로 인하여 출생이 멈춰가는 한, 백약이 무효갔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해법을 주신다고 정치인들이 외치시니 속더라도 기대해야겠습니다.

 

▲ 구희현 (416교육연구소 이사장)   ©경기도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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