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하순, 비행기는 하늘과 가까운 곳, 중국의 남단 윈난성 리장을 향해 날고 있었다. 기내에서 내다본 풍경은 솜사탕을 뭉게뭉게 늘어놓은 듯 끝도 없이 펼쳐진 구름밭이었다. 고요하고 잔잔한 풍경은 사람의 마음도 같은 빛으로 물들여 상하이 푸동공항을 경유한 긴 여정임에도 불구하고 지루한 기다림을 향기로운 설렘으로 바꾸어놓았다.
우리는 윈난성[雲南城]의 성도(城都)인 쿤밍으로 가지 않고 아름다운 고도(古都) 리장에 베이스캠프를 차렸다. 우리의 일정은 순전히 안내자인 〇〇여행사 정 대표의 손에 달려있었는데 차마고도를 포함한 전체 일정에 이의가 없었기 때문에 그대로 확정되었지만, 시간을 절약하고 싶으면 직항편이 있는 쿤밍에서 여행을 시작할 수도 있을 것이다.
윈난성은 북쪽으로는 티베트 자치구, 서쪽으로는 라오스, 미얀마, 남쪽으로는 베트남과 국경을 맞대고 있다. 각종 문화권에 걸쳐있는 지역인 만큼 중화민족의 축소판이라 할 정도로 다양한 민족, 언어가 공존하고 있다. 평균 해발고도가 1,980m인 고산지대로 세계의 지붕 히말라야에서 뻗어 나온 산줄기를 따라 높은 산들이 이어져 있는데 메이리쉐산[매리설산]의 최고봉인 카와커보봉은 무려 6,740m나 된다. 카와커보봉은 티베트의 4대 신산중에서도 으뜸인 성지인데 지금껏 인간의 정복을 허락하지 않은 신령스러운 봉우리이다. 윈난성의 장엄한 산봉우리와 따스한 정경은 한자로 雲南(운남)이라는 지명에 고개를 끄덕이게 했다. 한 템포 늦추고 하늘을 보면 그리 멀지 않은 곳에 구름을 머리에 인 높다란 봉우리들이 위용을 뽐내고 있었다.
리장에 도착해 현지 음식으로 저녁식사를 한 후 잠자리가 예약된 수허고성으로 향했다. 중국은 자국 내 전역에서 북경 표준시를 사용하기 때문에 한국과는 1시간의 시차가 있을 뿐이고 실제로도 3시간 정도의 시차라 굳이 시차 적응을 위해 애쓰지 않아도 되어서 좋았다. 출발 시간부터 따지면 낮의 길이가 3시간가량 길어진 셈이라 다음 날 아침 기상에 애를 좀 먹었을 뿐 출발 당일에는 오히려 여정을 즐기기에 여유로웠다.
정 대표가 깨우는 소리에 잠에서 깨어났다. 정 대표는 내가 매무새를 추스를 새도 없이 손을 잡아끌고 객잔의 2층 한쪽에 마련된 전망대로 안내했다. 투명한 공기 덕에 외할머니 머리처럼 정수리가 하얀 위룽쉐산[옥룡설산]이 손에 잡힐 듯 가까이에서 아침 인사를 건네고 있었다.
멋진 설산을 배경 삼아 사진을 남기고 출발 준비를 했다. 늦은 기상으로 인해 삼식이인 나조차도 아침밥을 포기하고 출발 준비를 하는데 객잔 안주인이 걱정스러웠던지 중국식 국수를 삶아 내놓았다. 다행히 국수가 입에 맞아 국물까지 후루룩 맛있게 먹고 차를 타기 위해 이동했다. 윈난성은 해발고도가 워낙 높은데다 목적지까지 이동하려면 봉우리 몇 개를 넘어야 할지 모를 일이어서 이미 고산병 증세를 보이기 시작한 일행 한 명은 한국에서 준비해 간 고산병약을 복용했다.
말이 베이스캠프이지 드넓은 중국 땅에서 목적지를 옮겨 다니자면 짐 가방도 애인처럼 사랑해야 한다. 그 때문에 손이 자유롭지 못해 사진을 찍으려면 걸음을 멈추어야 했는데 그럴 때마다 백팩 하나 정도로 짐을 줄이지 못한 나 자신을 구박하고는 했다. 그런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캐리어는 돌이 깔린 길바닥을 돌돌거리며 잘도 굴러갔다. 중국 전통양식이 잘 보존된 가게가 길 양옆으로 늘어서 있고 눈에 익숙한 꽃과 이름 모를 꽃들이 뒤섞여 만발한 정취 어린 골목길을 충분히 눈에 담지 못하고 떠나는 것이 못내 아쉬웠다. 일행의 맨 뒤에서 부지런히 발을 옮기면서도 나는 행여 지나는 풍경 하나라도 놓칠세라 분주히 셔터를 누르며 ‘다시 오마’ 혼자만의 약속을 했다.
윈난성은 남한의 4배, 일본보다도 넓은 면적을 가지고 있어 성 내에서의 이동에도 공항이 이용된다. 윈난공항집단이 쿤밍 창수이, 리장 싼이, 시솽반나 가사 등 세 개의 국제공항과 10개의 국내공항을 관리하는 것으로 보아도 윈난성의 규모를 짐작할 수 있다. 윈난의 90% 이상이 구릉이나 고원 등 고산지대이며 성도인 쿤밍은 일 년 내내 봄과 같은 기온이라 하여 춘성(春城)이라고도 불린다. 그러나 고도에 따라 기후가 달라져 지역별로 아열대기후, 온대기후, 냉대기후 등 다양한 기후를 가지고 있다.
한국에도 익히 알려진 차마고도(茶馬高道)는 윈난성 남쪽에서 시작해 리장을 거쳐 (최초에는) 티베트의 라싸에 이르는 길이다. 차의 명산지인 윈난성의 보이차를 말에 싣고 티베트에 이르러 말과 교환하는 무역로였던 차마고도는 실크로드보다 200년 앞선 문명교역로로 네팔, 인도를 넘어 나중에는 유럽까지 연결되었다고 한다. 우리의 윈난성 여행 목적이 이 차마고도 트래킹이다. 우리는 차마고도 트래킹을 위해 에너지를 비축하기로 하고 우선 별다른 힘을 들이지 않아도 되는 호도협을 먼저 탐방하기로 했다.
성 내에서의 이동이라 해도 비행기 이외의 수단으로 이동하려면 여정이 만만치가 않다. 굽이굽이 몇 개인지 세는 것조차 어려운 산길을 돌아서 넘고, 강을 건너야 가능하기 때문에 목적지까지 보통 3~4시간이 소요되니 말이다. 이날은 정 대표가 택시를 대절해 놓아서 멀긴 하나 편하게 목적지까지 갈 수 있었다. 호도협으로 가는 중간 중간에 휴게소가 있어 현지식으로 식사를 하거나 급한 볼일을 해결하기도 하고 간식거리를 살 수도 있다. 때로는 휴게소 전망이 훌륭해 황금 휴식이 되기도 하고, 다양한 기후 덕에 온대, 열대 과일 모두를 사 먹을 수도 있다.
마지막 휴게소를 출발한 지 얼마쯤 지났을까. 웅장한 물소리가 차차 볼륨을 높여감에 따라 호도협에 가까이 왔음을 직감했다. 대로에서 호도협으로 들어서는 길 입구에는 한국의 행락철과 비슷한 광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차선 하나에는 관광버스 같은 대형 버스들이 줄지어 서 있고 다른 하나의 차선에는 작은 차들이 늘어서 있었다. 1시간여의 기다림 끝에 교통 통제인의 수신호에 따라 구불구불 길지 않은 오르막길을 올라 주차장에서 내린 후 표를 사고 터널형 에스컬레이터로 다시 하강을 했다. 에스컬레이터 터널을 빠져나오자마자 마치 호랑이가 포효하는 듯 천둥 같은 울림이 협곡을 쩌렁쩌렁하게 호령했다.
포수에 쫓기던 호랑이가 펄쩍 뛰어 건넜다는 전설이 있는 호도협은 해발 5,596m의 위룽쉐 산과 5,398m의 하바쉐산을 양옆에 끼고 이어지는 협곡으로 옅은 비취색의 금사강이 흐르고 있다. 이 호도협은 가늠할 수 없는 깊이 때문에 평소에도 장대한 물줄기가 휘몰아치는 폭풍우와도 같은데 더욱이 우리가 방문한 때에는 비가 내린 지 며칠 지나지 않은 탓에 시커먼 물색에 우레와 같은 포효음을 뱉어내며 두 개의 고봉을 완전히 장악한 채 흐르고 있었다.
누구의 어떤 소원이 서려 있을까? 안전을 위해 설치된 철제 난간에는 한국의 여느 데이트 장소와도 같이 각양각색의 자물쇠가 주렁주렁 달려있었다. 행로 곳곳에는 알록달록 전통 복장으로 치장한 소수민족 여인들이 서 있었는데 아마도 같이 사진 찍기를 원하는 여행객들을 기다리는 것 같았다. 우리는 호도협을 가장 잘 조망할 수 있는 안전지대 끝까지 가서 아름답고도 위대한 자연을 카메라에 담았다. 쉼 없이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 바위에 부딪혀 튕겨 나온 물방울이 얼굴에 앉았다 금세 증발해버렸다.
여행은 앞서거니 뒤서거니 시간과의 싸움이다. 정해진 스케줄에 따라 단체로 이동할 때는 더욱 그렇다. 그 사실을 자각하자 우리는 주차장에서 기다리고 있을 차편에 늦지 않기 위해 호도협을 지키고 있는 호랑이상(像)과 서둘러 작별 인사를 했다. <저작권자 ⓒ 경기도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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