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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 밴드, ‘요즘 것’들을 읽는 방법.

김문기 | 기사입력 2021/02/25 [15:41]

인디 밴드, ‘요즘 것’들을 읽는 방법.

김문기 | 입력 : 2021/02/25 [15:41]

▲ 인디 밴드 크라잉넛(좌)과 새소년(우)     ©경기도민신문

 

 

인디 음악은 장르가 아니다. 그저 자본(기업,투자)의 힘을 빌리지 않고 스스로의 힘으로 자신들을 알리고, 노래와 앨범을 만들어 파는 음악가들의 음악을 통칭하는 하나의 개념이다. 

 

주로 청년세대인 이들은 말 그대로 자신들의 사고방식과 가진 역량을 총동원해 자신의 영향력을 확인하고 확장하고자 한다. 그것이 돈이건, 음악성이건, 시대정신이건 말이다. 또한, ‘인기를 얻은’ 인디밴드는 오롯이 그들의 능력만으로 대중에게 알려지고, 유명해지기 때문에 거대자본이 투입된 대중음악과는 달리 그들이 왜 인기를 끌었는지가 더 명확하게 보인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을 주의 깊게 본다면 우리는 현 청년 세대가 무엇을 원하고, 어떠한 상태인지 알 수 있다. 

 

인디 1세대로 통칭되는, 데뷔 25주년을 맞이한 밴드 크라잉넛이나 노브레인, 자우림 등은 대체로 어떤 낙관론이 지배적인 시절의 인디 밴드들이다. ‘뭐라도 되겠지, 산 입에 거미줄 칠까. 그러니 나는 내가 좋아하는 걸 해야겠다.’ 라는 생각으로, 무턱대고 만들어진 밴드들이다. 물론 이는 그저 발생의 경위만을 말할 뿐, 그들이 ‘인디음악’자체가 생소하던 토양에 뿌리내리기 위해 들인 수많은 노력을 얕잡는 것은 아니다. 낙관론에 기반한 낭만은 그들이 거침없이 행동하는 원동력이었고, 그 특유의 정제되지 않은 모습이 한창 ‘다른 것’을 찾던 대중에게 주효했다.

 

인디 2세대는 자신들이 존재함을 요란하게 알리는 펑크사운드와는 다르게, 잔잔한 사운드를 배경으로 덤덤하게 현실을 말하고 위로해주는 부류들이 주를 이뤘다. 주로 음악을 하며 부업으로 생계를 유지하던 1세대와는 달리, 이들은 본업을 두고 남는 시간을 쥐어짜 음악을 한다.  신자유주의의 서장에서 청년들을 볶아내고 쥐어짜내는 시기가 열리고, 체념적 정서가 지배적인 사회에서 자신을 위로해주고, 패배자가 된 듯한 지친 일상에서 ‘괜찮아, 나도 그러고 살아.’ 라고 말해주는 이들에게 청년들의 마음이 동했음은 당연하다.

 

인디 3세대는 개인기업에 가깝다. 스스로도 자신들을 ‘브랜드’라 여기며, 비용 허들이 낮아진 수많은 매체를 이용해 적극적으로 자신들을 홍보한다. 또한, ‘인디 뮤지션’ 이 아닌 ‘인디 아티스트’로 그 개념 자체도 확장되었다. 소통 수단이 다양한 만큼 다양한 협업이 이뤄지고, 장르간의 믹스도 생긴다. 현실보단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것들을 아름답지만 모호한 말과 사운드로 표현한다. 늘 음악이 좋다는 기본적인 전제와 더불어, 예전의 인디 팬들이 세대별로 ‘새로운 것’이나 ‘위안’에 끌렸다면, 지금의 인디 팬은 해당 밴드의 ‘브랜드’를 통해 소위 ‘있어 보이는’ 자신의 모습에 끌리는 경향도 존재한다.  

 

이제 곧 30살이 되는 한국의 인디 문화는, 여전히 가장 젊은 문화이다. 어떤 목적과 의도도 덧씌워지지 않고, 청년 세대의 삶의 형태를 고스란히 드러낸다. ‘요즘 것들이 무슨 생각을 하고 사는지 모르겠다, 요즘 것들은 이해가 안 된다‘는 말을 하고 싶다면, 당장 당신이 매일 같이 보는 유튜브를 켜고, 검색창에 ’인디‘ 두 글자를 입력해 보라. ’요즘 것‘들의 불안, 열정, 저항, 위로, 그 모든 것들이 귓속으로 들어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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