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희현 이사장 "단재 신채호선생 1936년 2월 21일 뤼순감옥 순국일 85주기!"

단재 선생은 뤼순감옥에서 보석으로 나와서 살 수도 있었으나 친일파가 보증서를 써 주는 보석으로는 감옥에서 안나겠다고 하시고 목숨을 버리셨다고 한다.

경기도민신문 | 기사입력 2021/02/21 [15:25]

구희현 이사장 "단재 신채호선생 1936년 2월 21일 뤼순감옥 순국일 85주기!"

단재 선생은 뤼순감옥에서 보석으로 나와서 살 수도 있었으나 친일파가 보증서를 써 주는 보석으로는 감옥에서 안나겠다고 하시고 목숨을 버리셨다고 한다.

경기도민신문 | 입력 : 2021/02/21 [1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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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재 신채호선생

1936년 2월 21일 뤼순감옥 순국일 85주기!

 

따스한 봄볕을 받고 과거의 길을 걸으며 답답함을 달래다.

단재 선생의 서울의 흔적은 많이 없다.

청주 생가와 북경 등 해외 독립운동활동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한매일신보 논설주간과 주필으로 활동하셨던

대한매일신보 창간 사옥을 찾아 보았다.

조계사 뒤쪽 수송공원에 자리하고 있다.

단재선생은 역사를 잊은 민족은 미래가 없다고 하셔서

역사박물관에 들러 곱씹어 보고 읽으면서 나왔다.

 

단재 선생은 독립운동가, 사학자, 언론인, 교육자로

사시면서 대한민국의 독립과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음에도 불구하고 주류에 밉보여서 저평가된 것 같다.

이승만에 대들고 무정부 아나키즘을 선호해서 그런가?

 

특히 오늘의 사이비, 기레기들은 단재 신채호선생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이 기레기들은 그 때의  친일파 족속과 기득권들과

협잡하여 살아가고 있는 현실이 바로 단재선생의

목숨값을 아프게 한다.

 

단재 선생은 뤼순감옥에서 보석으로 나와서 살 수도 있었으나

친일파가 보증서를 써 주는 보석으로는 감옥에서 안나겠다고

하시고 목숨을 버리셨다고 한다.

오늘날 같으면 고지식하다고 말을 들을 것이다.

단재선생은 일제에 고개 숙일수 없어 세수도 고개를 쳐들고

했다니 철두철미하고 완벽한 독립투쟁 전사라고 볼 수 있다.

 

지금 생각하면 단재선생은 많이 외로웠을 것이다.

혼자일 때가 많고 만나는 사람도 이별하는 사람도 적었을 것 같아서다.

 

단재 선생의 독립운동가과 언론인 그리고 사학자로서

재평가를 받아야 하고 학교에서도 자신있게 소개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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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희현 (416교육연구소 이사장) © 경기도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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