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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가도 그게 바로 '進步'일 것이다.

민주주의가 성숙하지 않은 나라에서 우리는 모두 헛되고 헛된 꿈을 꾼 것 같다.
그것이 바로 '깨우친 자'의 오만일지도 모른다.

경기도민신문 | 기사입력 2022/03/10 [15:51]

그렇게 가도 그게 바로 '進步'일 것이다.

민주주의가 성숙하지 않은 나라에서 우리는 모두 헛되고 헛된 꿈을 꾼 것 같다.
그것이 바로 '깨우친 자'의 오만일지도 모른다.

경기도민신문 | 입력 : 2022/03/10 [15:51]

▲ 박연숙 더불어민주당중앙당인권위원회 부위원장     ©경기도민신문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한바탕 '一場惡夢'이길 바랐지만 현실이다. 이런 결과는 모든 권력을 줄 테니 나에게 복종하라는 악마의 꼬드김을 거부한 이가 그 시절에도 예수 한 분이었다는 가르침을 우리가 가볍게 넘긴 탓이다. 예수는 홀로 십자가에서 숨을 거두었다.빵 한 개를 배곯는 이 없도록 서로 나누어 먹는 것보다 '왜 나누어야 해. 너 혼자 다 먹을 수 있는데.'라는 유혹에 대한 인간의 절대적인 욕망의 강도를 간과한 탓이다.
저기 있는 빵 하나를 열 명이 나누어 먹자면 열 명이 불만족할 수 있지만, 혼자 배불리 먹을 수 있을 거라는 유혹 앞에서는 반대로 열 명 모두가 만족할 수 있음이 이번 선거로 증명되었다. 민주주의는 인간의 욕망을 무시하는 순간 패한다.우리 모두는 너무 '우리'라는 우물 안에 갇혀 지내지 않았나 돌아본다. 이런 '우리'가 소수라는 사실도 모르도록 말이다. 적을 잘 몰랐으니 패전은 당연한 결과 아닌가. 세상에 나가봐야 세상의 크기를 알고, 섞여봐야 다름도 알 수 있었을 테니.'다 같이 잘살자.'는 외침은 단지 구호로만 받아들여진다.
'다 같이 잘살자.'는 명제는 기본으로 깔려야 하는 것일 뿐, 욕망의 개개인을 이끌 수 있으려면 각각의 구체적이고 실체적인 접근이 필요하다.야수의 시대에 수단과 목적이 같으면 이길 수가 없다. 포장의 섬세함이 따라야 한다. 방법은 얼마든지 다양화 할 수 있으니. 대놓고 절반을 적으로 간주하고서 전쟁을 선포했다면 우리 쪽에서는 이탈자가 없어야 하고, 반면에 상대 쪽에서는 이탈자가 생겨야 이긴다.
우리는 '영끌'을 해서라도 집을, 주식을, 행복을 사야하겠다는 사람들에게 포기라는 전제를 던지고서도 왜 더불어 살아야 하는지 설득하지 못했다. 그들의 눈과 귀를 사탕으로 틀어막은 언론을 징벌하지 못했다. 더 많이 해먹은 자들끼리 짬짜미 하는 짓을 막지 못했고, 심판하지 못했다.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우리가 전열을 재정비할 때는 군자금을 댈 사람도 우리 편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언제까지 '만원빵'을 할 것인가. 서민의 매달 만원이라는 기부금보다 불의했을지라도 '천만 원' 기부에 열광하는 것이 민중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으면 한다.배짱 있게 갔으면 좋겠다. 우리 중 누군가 공격을 받고 설령 그 진실이 오리무중이라해도 '그게 뭐 어때서. 너희는 더하잖아!'라고 손가락을 상대에게 겨누면 좋겠다. 그런 분위기가 조성되어야 진실도 밝힐 수 있다. 극도의 결벽증을 허물면 좋겠다. 우리 안의 적과 결별을 했으면 좋겠다.민주주의가 성숙하지 않은 나라에서 우리는 모두 헛되고 헛된 꿈을 꾼 것 같다. 그것이 바로 '깨우친 자'의 오만일지도 모른다.아프고 아프지만 좀 더 천천히 걷자. 한 계단, 한 계단 밟아 올라가며 뒤따라오는 군중도 배려하자. 가슴에 굳은 심지를 품고 기다려주자. 그날이 언제가 되던, 그날이 오기만 하면 되는 것 아닌가.
그렇게 가도 그게 바로 '進步'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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